구약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신앙 고백의 문서를 넘어섭니다. 이는 동시에 고대 중동의 역사와 국제 정세, 제국의 부침 속에서 살아간 한 민족의 생생한 역사서입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역사상 지역 강국이 된 적은 없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바벨론과 앗시리아 같은 초강대국 틈에서 생존과 신앙,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민족의 투쟁은 더욱 뛰어난 인물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과 이 두 제국 사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구약의 인물들을 통해, 구약이 말하는 신앙의 이야기가 실제 역사의 구체적인 현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조명합니다.
1. 이스라엘과 앗시리아 제국의 충돌: 히스기야와 이사야
기원전 8세기 후반, 중동 지역의 절대적 강자로 떠오른 앗시리아 제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포함한 소왕국들에 대한 무력 침공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 살만에셀 5세, 사르곤 2세, 산헤립 같은 군주들은 치밀한 군사 전략과 공포 정책으로 도시들을 무너뜨리고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른바 '앗시리아 포로 정책'은 정복 지역의 민족 정체성을 와해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국가가 바로 북이스라엘이었습니다.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합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성경에서는 남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예언자 이사야가 등장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공세 속에서 예루살렘을 지켜냈으며, 성경은 이를 "여호와께서 유다를 지켜주신 결과"로 묘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남긴 '산헤립의 프리즘' 점토 비문에서 "유다의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가두었다"는 내용이 있지만, 성을 점령했다는 기록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과 앗시리아의 기록이 교차 확인되는 귀중한 고대사 자료로 평가됩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며, 강대국과의 군사 동맹이 아닌 여호와만을 의지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파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앙적 선언을 넘어, 당대 유다의 정치적 내분과 외교적 혼란을 생생하게 반영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사야는 정치적 위기의 시대에 종교 지도자이자 민족의 도덕적 양심으로 기능하며, 단순한 선지자가 아닌 당시 중동 외교 질서 속 실존 인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2. 바벨론 포로기와 구약 인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약 150년 후, 이번에는 남유다가 강대국 바벨론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을 첫 번째로 포위하고, 그 후 기원전 586년에 성전을 파괴하며 남유다를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이 시기를 '바벨론 포로기'라고 부르며, 유다 백성들은 대거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됩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구약의 인물들은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직접 목격하며, 백성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이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매국'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예레미야는 바벨론 침공을 하나님의 징계로 해석하고 회개와 순종을 통한 미래의 회복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에스겔은 포로로 끌려간 후 바벨론 땅에서 활동한 예언자로, 환상과 상징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을 약속했습니다. 특히 '마른 뼈 환상'은 절망에 빠진 유다 백성에게 희망을 불어넣은 대표적인 메시지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과 이후 메대-바사 제국의 궁정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물로,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을 잃지 않고 제국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대표적인 '포로 출신 엘리트'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고대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문헌에는 외국인 관료가 고위직에 오른 사례가 다수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성경 속 다니엘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또한 바벨론의 행정체계, 궁정 예절, 꿈 해석 등의 요소들도 당시 문헌과 일치하여, 다니엘기의 역사적 신빙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3. 제국 속 구약 인물의 의미와 역사성
앗시리아와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파괴한 '적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의 영향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정체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포로기를 전후로 성전 중심의 종교는 율법 중심의 공동체로 탈바꿈했고,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좁은 민족주의를 넘어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선포하는 보편적 메시지로 확장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언자들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제국의 압박 속에서 민족의 정신을 지켜낸 정치·문화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종교, 정치, 사회, 국제 외교가 복잡하게 얽힌 현실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기록은 제국에 저항하는 '신앙의 저항서'로도 평가됩니다. 고대 제국의 문헌과 고고학적 발견들이 성경 속 모든 인물과 사건을 완벽하게 입증하지는 못하지만, 점차 그 시대의 정치 질서와 문화적 맥락이 성경 기록과 놀랍도록 일치함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벨론 점토 문서에는 예루살렘 왕 여호야긴의 이름이 등장하며, 그가 포로로 바벨론에서 '왕의 밥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어(바벨론 행정문서, 기원전 6세기) 열왕기하 25장의 기술과 정확히 부합합니다. 구약 성경은 단순한 신앙의 고백서가 아니라, 고대 근동 세계사 속에서 형성된 '살아 있는 역사 문서'입니다. 히스기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인물들은 당대의 격동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는 동시에, 현실 정치와 외교, 제국의 위협에 맞서 싸운 민족의 전략가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 속 인물들은 중동의 역사, 종교, 제국과 민족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실존 인물들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